▣ 글에 대한 생각
# 글에 대한 경험이 쌓여야 한다. 삶에서 나오는 다양한 경험을 쓰다보면 잘못된 경우의 수를 알 수 있다. 물론, 테크닉과 노하우도 배울 수 있다. 많이 실패하고, 못 써봐야, 실패의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자신만의 고유 문체를 가져갈 수 있다.
# 내가 글을 쓰는 양이 늘어날수록 자신만의 편안한 문체가 만들어진다. 자신이 편하게 쓸 수 있는 글의 ‘진입로’를 만들어간다는 생각으로 써라. 생각이 정리돼 쓰는 게 아니고 쓰면서 생각을 정리해나가는 거다. 내가 뭘 쓸지 모르는 상태에서 쓰다보면 글이 나오기 마련이다. 제일 어리석은 것이 생각만하고 쓰지 않는 것이다.
# 머리를 비우는 일도 중요하다. 판다, 생각 등을 버리는 일도 중요. 정말 그래? 진짜? 묻다보면 다 버리게 된다. 진짜 네 생각이야? 계속 묻고 질문하자.
# 일주일에 한 편 정도 ‘꼴’을 갖춘 글을 쓴다는 마음을 갖자.
# 글쓰기는 답을 찾는 게 아니고 질문을 하는 과정이다. 다양하고 섬세한 스펙트럼으로 문학적 글을, 여러 방면으로 써야 한다. 자기 생각을 내려놓는 마음으로 접근해야 한다.
# 감정으로부터 떠나있어야, 감정적 판단은 빼고 쓰는 게 좋다. 객관적인 정보를 주고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삶은 연속적이고 글은 불연속적이다.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삶을 편집했다는 것, 즉 굉장히 감정적으로 추린 부분이다.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에 대해, 항상 편집자적 자세를 갖고, 사건에 대해 서술해야 한다.
# 어떻게 써야 상대방에게 닿는지 여러 패를 내보이기 전에는 알 수 없으므로 여러 형식으로 글을 써보자.
# 글 안에서 불필요한 게 필요할 이유는 없다.
# 갈등상황을 명확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 인간은 계속 배워나가야 하는 존재다. 감수성이 무력해지는 지점이 있고 이를 느끼는 장이 중요하다. 어디서 성적인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을까?
# 주류의 언어는 ‘대상화’하는 말만 있다. 그런데 주류를 벗어난 일을 언어화하고 싶은 게 모두의 화두
▣ 좋은 글이 되려면
# 자기 행동에 대해 ‘왜?’라고 물어야 한다.
# 감정적으로 떠나, 감정적 판단은 글에서 빼는 게 좋다. 객관적인 정보를 주고 읽는 사람이 판단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글이 좋은 글이다.
# 주제파악을 위해 중간중간 요점 정리를 해주는 게 좋다. 복잡했던 마음이 책(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와 연결됐을 경우, 이게 어떻게 풀렸는지, 그 접점을 설명해 줘야, ‘책 읽고난 후의 변화’를 알 수 있다.
# 쉽게 분노하고 쉽게 화해하는 글은 좋지 않다.
▣ 생각할 문제
1.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주제로 글을 쓰는 게 맞나?
(후시딘) 정리하고 글을 써야지 하지 않나/ (선생님) 글을 쓰면서 감정을 정리해야 한다.
2. 육적자아와 종교적 자아 ‘당신은 학부모입니까? 부모입니까?’
3. 살림, 가사노동, All or Nothing ⇒ 사람이기 때문에 하게 되는 천박한(?) 계산
4. 이율배반적 자기 모습
5. 성 : 남자의 성vs여자의 성, 여(방어적)vs남(우월적)
6. 시대의 요청에 맞춰 몸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
▣ 과제 글 커멘트
# 옥수수 : 차분하게 글을 끌고 나가는 힘이 있음, 그러나 마지막 문단에서 단절된 느낌이 있다. /‘고정하게 됐다’ 이 부분이 궁금함/ 2가지 이야기가 버무려져 산만한 느낌이 든다. 아직 결별하지 못한 것 같다. 녀석을 ‘소년’으로 쓸 수 있을 때 쯤 진짜 결별을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 몇 년 간의 교제 – 서신 주고받기 – 그 다음 둘의 관계 – 결별... 전체적으로 풀어보면 좋을 듯. 서사적 요점정리가 필요하다. 판단의 근거를 글에 담아주면 좋겠다. 아버지/나/녀석 세 명의 캐릭터에 대해 명확하게 서술하면 좋겠다.
# 푸실 : 종교가 본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읽는 사람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글은 좋은 글이라고 할 수 없다.
# 밤밤 : 집안일에 대한 해법이 제시되면 좋을 것 같다. 관계의 역동을 읽을 수 있다. 갈등상태를 조금 더 명확하게 보여주면 좋지 않을까.
⇒ 수미쌍관 구조로, 첫 문단과 연결된 마지막 문단을 쓰면 좋겠다. 권력의 움직임을 묘사하는 방식으로
# 슝슝 : 폭력적이다. 문장부터 소재까지. 어떻게 웃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해릴린은 유쾌하고 즐겁게 성을 묘사했는데, 이걸 불편하게 느끼는 나와 여전히 남자로서 즐기는 나가 존재한다는 걸 풀어보고 싶었다(필자 본인), 남자라서 좋겠다고 느꼈다. 남자가 이야기할 수 있는 성과 여자가 이야기할 수 있는 성은 다른 것 같다.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해줘서 고맙다. 섬세한 감정의 결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 중요하다.
⇒ 성은 구조적 비대칭 속에 느끼는 억압기제일 수 있고, 비대칭성 속에서 성에 대한 감각이 달라지기 마
련이다. 글 안에 있는 다른 여성들이 보여 여성독자는 불편했을 수 있다. 일상에서 성에 대해 공론화되
지 못했기 때문에 성적 감수성이 남/녀가 다를 수 있다. 성교육이 동등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본인이
찔리는 부분이 존재하는 데 그걸 끄집어 냈다는 게 대단하며, 그러나 마지막 마무리가 안되서 모호한게
아쉽다.
# 개미: ‘대단하다’는 말에는 나는 그런걸 못한다, 네가 대하는 사람들이 안됐다는 뜻이 있다는 것이냐. 일신을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갈 때 그런걸 보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 대단하다는 의미일게다. 세상을 비춰주는 등불같은 사람인 것 같다.
⇒ 마땅히 표현할 말이 없는 것 같다. 살면서 높치는 부분을 찍어냈다. 연민은 자기의 힘을 약화시키는 존재라고 니체는 말했다. 삶을 0으로 하락시키니까.
# 세콰이어 : 우리는 늘 질문속에 들어가 살고 있다.
⇒ 일상은 혼란과 혼돈과 비타협의 연속인데, 결말을 대타협으로 끝냈다. 삶을 잘 담아내기만 해도 좋은 글이다. 질문을 잘 알고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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