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니숲길>
- 도종환 -
어제도 사막 모래 언덕을 넘었구나 싶은 날
내 말을 가만히 웃으며 들어주는 이와
오래 걷고 싶은 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보다 다섯 배 열 배나 큰 나무들이
몇시간씩 우리를 가려주는 길
종처럼 생긴 때죽나무 꽃들이
오 리 십 리 줄지어 서서
조그맣고 짙은 향기의 종소리를 울리는 길
이제 그만 초록으로 돌아오라고 우리를 부르는
산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것들을 주체하기 어려운 날
마음도 건천이 된 지 오래인 날
쏟아진 빗줄기가 순식간에 천미천 같은 개울을 이루고
우리도 환호작약하며 물줄기를 따라가는 길
나도 그대도 단풍드는 날 오리라는 걸
받아들이게 하는 가을 서어나무 길
길을 끊어놓은 폭설이
오늘 하루의 속도를 늦추게 해준 걸
고맙게 받아들인 삼나무 숲길
문득 짐을 싸서 그곳으로 가고 싶은
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라산 중산간
신역(神域)으로 뻗어 있는 사려니 숲길 같은...
『사려니는 '살안이' 혹은 '솔안이'라고 불리는데 여기에 쓰이는 '살' 혹은 '솔'은 신성한 곳 또는 신령스러운 곳이라는 신역(神域)의 산명(山名)에 쓰이는 말이다. 즉 사려니는 '신성한 곳'이라는 뜻이다. 』 사려니숲에 당도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사려니'의 의미입니다.
사려니숲길은 [비자림로-물찻오름-사려니오름-삼나무숲]으로 연결되는 숲길입니다. 제주도의 숨은 비경 중 하나인 이곳은 청정 숲길로 깨끗한 공기를 자랑하는 곳입니다. 노루, 거미, 까마귀 같은 동물들과 서어나무, 졸참나무, 삼나무 같은 다양한 수종들까지 만날 수 있어요. 사려니숲 전체 코스는 17km 정도로 보통 걷게되는 올레길의 3배 정도 되는 길이예요. 물찻오름은 과거에 오름탐방이 금지되었던 곳으로 일년에 두 번 탐방이 허락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사려니오름은 사전예약시에만 올라갈 수 있습니다. 물찻오름은 화구호에 물이 항상 차있어서 붙여진 이름이고, 사려니오름 사전예약은 064-730-7272로 할 수 있습니다.
하루 중 오전 일정으로만 잡혀있던 사려니숲길. 부족한 시간을 아쉬워하며 초입의 삼나무숲을 위주로 구경했습니다. 끝을 볼 수 없을 만큼 위로 솟은 삼나무들이 안개와 구름을 적절하게 뒤섞어놨습니다. 조용히 숲을 거닐면 풍요로운 자연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나뭇잎 살랑이는 소리, 빗물 똑똑 떨어지는 소리, 새들의 지저굼, 물소리. '신성한 곳'이라는 뜻만큼 평화로운 곳 입니다. 피톤치드가 온 몸을 휘감을 것 같은, 자연의 상쾌함이, 건강함이 절로 느껴지는 사려니숲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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