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 법도 있고? 우리 임이아배가 무신 죄를 졌다고 관가 놈들이 개 끌듯이 끌고 갔겄소!...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 했소! 우리 임이 아배가 샐인할 사램이오? 죄라고는 씨 빌리준 것밖에 없소! 그 천하에 무도한 년이, 사람을 날로 씹어묵을 그년이 평산이 그놈하고 배가 맞아서 한 짓 아닌가 말이오!...내가 말을 잘못했소? 내 말이 그르단 말이오? 와 말이 없소! 한마디 대꾸가 없소! 옳으믄 옳고 그르믄 그르다고 말 좀 들어봅시다!..." (p.426~427)
양반을 죽인 죄로 죽음을 당한 남편을 두고, 임이네는 고함을 질러댄다. 임이네는 바라보는 수십개의 눈동자는 쌀쌀하니 말이 없을 뿐이다. 한 남자의 아내란 게 무엇이관대, 남편의 죄를 대신 변명해야 할까. 무서우리만치 쌀쌀한 눈빛을 견디며 고함을 지르는 그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냥 뻗치고 서 있던 거복이 순간 모믈 날렸다. 마치 소가 머리를 숙이고 뿔이 목표물을 겨냥하며 달려가는 것처럼, 소나무 둥치에 가서 머리를 처박는다. 제 머리를 처박고 또 처박으며 산이 울리는 통곡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p.433)
귀녀와 음탕한 모략을 꾸몄던 평산은 죽음을 당하고 그 아내는 목을 메어 자살을 한다. 어미의 묘 앞에서 아들은 소마냥 머리를 들이받으며 죽기를 기원하는 것 같다. 양반을 죽이기 위해 일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내는 임이네마냥 살인죄를 가진 남편의 여자로 살기를 거부하듯, 그 즉시 몸을 멘다. 소리죽여 울던 아들은 머리를 땅에 밖는 일로 눈물을 떨군다.
토지 1부 2권에서는 신분상승을 꿈꾸던 귀녀의 모략이 절정으로 치닫고 이로 인해 최치수가 죽음을 당한다. 환이에 대한 애닯음을 치수에 대한 냉랭함으로 해소하던, 강인하기만 하던 윤씨부인도 제 어깨에 있던 두 아들을 모두 느껴 그저 한없이 연약한 여인으로 무너져 내린다.
양반의 권세, 환이와 치수의 정신적 싸움, 귀녀의 음모. 무엇하나 놓치기 어려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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