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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세상/영화

영화 <007 스펙터(Spectre, 2015)> 흔한영화

 

 

 

 

띠랏띠라~ 띠라라~♬ 모든 이에게 이 음계 하나만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다는 영화라는 점, 고리타분한 내용 전개에도 시리즈가 대부분 흥행했다는 점, 많은 액션애호가들의 사랑을 놓치지 않는 다는 점, 이런 특징들에 이끌려 나는 <007 스펙터>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했다. 제임스 본드 요원이 있다. 진정 '다이 하드(die hard)'라 명명해야 할 것 같은, 남부럽지 않은 생명력을 자랑하는 그가, 자신의 직장 - MI6 - 를 지키기 위해 갖은 고투를 겪는 내용이다. 그 과정에서 여느 시리즈가 그렇듯 아름다운 여성들이 등장하고, 그녀들은 쉽사리 본드에게 사랑을 느끼고, 그는 그녀를 지키는 동시에 자신의 직업적 본분을 다해, 직장을, 나라를, 세계를 안전하게 유지시킨다. 

 

한 여성이 나온다. <미녀와 야수>의 미녀로 얼굴을 알린 '레아 세이두'다. 또 한명의 그녀가 더 있는데 '모니카 벨루치'다. 초반에반 얼굴을 보이는 모니카는 악당의 아내로 등장한다. 사건의 단서를 찾기 위해 (그녀를)찾아간 본드에게 악당의 아내는, 쉽사리 사랑을 주고 몸을 허락한다. 왜? 레아는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는 본드와 첫 대면을 한다. 그걸 알리려 왔냐며 역정을 내고, 나쁜 놈들에게 붙잡혀 가면서도 화를 내는데, 어느 순간 '아버지의 죽음을 알고 싶다'며 본드에게 친한 척을 하더니, 결국 또 아버지 뻘 되는 그와 사랑을 나누기에 이른다. 왜? 

 

영화가 몇 년도에 제작되었고 연출자가 누군지와 상관없이 007시리즈에서 '여성들'은 항상 맹목적으로 본드를 사랑한다. 그를 위해 목숨을 던지고 - 의사, 가정주부, 인질 그 무엇이든 - 순식간에 여걸이 되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007 스펙터>에서는 잠시나마 현실적인 여성이 그려지기도 한다. 본드의 위험천만한 현실을 깨닫고 이별을 고하는데, 그녀는 어느 새 돌아와 본드와 함께 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007 스펙터>의 약점은 또 있다. 시리즈물에서 드러나기 마련인 특징인데, 부족한 서사가 바로 그것이다. 감독들은 관객들이 모든 '맥락'을 알고, 이해하고, 외우고 왔을거라 생각하는 걸까? 혹자는 '네가 전작을 전부 챙겨보지 않고 영화를 봤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한 편의 영화가 관객에게 의미있게 다가가는 길은 그 내용과 의미로 하여금 감동과 교훈을 줄 때 아닐까. 이번 편에서도 역시 여러 인물이 등장하고, 많은 장소에서 사건 사고가 발생하지만, 맥락은 전혀 잡아주지 않는다. 관객은 의심하지 않고 '그러려니' 수용해야 한다. 모두 똑같은 사고방식을 강요하는 우리네 세상같은 모습.

 

나는 이런 두 가지 이유로 <007 스펙터>를 흔한 영화라고 말하리라.  제임스 본드는 언제나 건재하고, 여성들은 언제나 그의 매력에 빠지고, 모든 사건들은 본드에 의해 없던 일처럼 해결돼 버려 전 세계는 언제나 안전하게, 늘 그런 모습으로 돌아간다. 그렇고 그런 삶의, 아주 흔한 영화다.